대충 생각나는 것들

6 - 교사 집회가 상징하는 것에 대해

Apollonian 2023. 9. 10. 22:13

쥐꼬리만한 권력에 대해서

 

선생님이 없이 성장하는 아이는 없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을 둘러싼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더욱 충격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시위를 한다는 것은 시스템에 대한 내재된 불만을 표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으로 표출되는 불만은 항상 내재된 그것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시위란 긴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곪고 곪아 터져나오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여러 기사와 SNS 등을 통해 받아들이는 교사들의 불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교사들이 아주 긴 시간 동안 억울함과 분노를 억눌러오다가, 일련의 트리거들을 통해 이제야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교사들의 시위를 보면서 자신이 교사들보다 더 힘들고, 자신의 직업이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교사들은 방학에 쉴 수도 있고, 직업만족도도 높지 않느냐면서. 

나 또한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라든지 업무의 강도 등이 다른 직업군보다 더 크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사실 그런 것들이 정량적으로 비교가 가능한가?).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직업군은 교사들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간호법을 둘러싸고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이 각각 서로 대립하여 집회를 열기도 했었다. 

몇 년 전에는 의사들이 약 20년만에 단체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요즘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불만이 쌓여있는 것 같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테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여러 직역들의 사람들 속에 불만이 쌓여간다는 것이다. 

 

한국 근로자의 직무만족도는 OECD 최하위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정치가 부패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정책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산가격의 거품으로 인해 근로의 가치가 급격히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사이에 직업의 사명감이라든지 사회적 책무라든지 하는 것들은 우스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가치를 좇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 말은 즉, 내가 살아가면서 마주쳐야 하는 수많은 직역의 사람들에게, 그런 가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직업에 대한 불만은 나태와 부패의 원동력이 된다. 

특히 그 직업이 자신의 노력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부정보로 투기하는 LH 직원들, 범죄자로부터 도망치는 경찰들, '누칼협'이라 조롱받는 공무원들. 

또 소방관, 군인, 판사, 검사, 교수, 등등.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평생 모아도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렵고, 국민연금보다도 못한 연금으로 노후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미련한 짓이다. 

 

아주 사소한 트집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교사의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요구사항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학부모들, 그들은 교사라는 직업을 자신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 없는 직업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교사도 얼마든지 나태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다. 

그들의 아이가 수업을 듣든지 말든지, 다른 아이들과 다투든지 말든지, 왜 교사가 신경써야 하는가? 

교과서 몇 줄 읽어주고, 영화나 보여주고, 야외학습으로 놀게 하면 그만이다. 
초등학생들은 시험도 없지 않은가? 

한글을 못 읽든 말든, 덧셈뺄셈을 못 하든 말든, 아이가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와 예절도 모르고 자란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크든 작든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사회처럼 파편화된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가진 권력이 쥐꼬리 같아 보이는가? 

그 사람이 쥐꼬리 같은 권력을 휘두를 때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이제 어떤 의사들은 불필요한 치료를 환자에게 권유할 것이다. 

이제 어떤 간호사들은 불법진료도 서슴치 않고 할 것이다. 

이제 어떤 판사들은 전관 변호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것이다. 
이제 어떤 경찰들은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자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이제 어떤 군인들은 병사의 안전보다 진급을 위한 홍보에 더 열을 올릴 것이다. 

당신은 그래도 다치지 않을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나? 

 

근로자들의 불만이 이제 선을 넘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교사 집회의 상징성이다. 

내 생각에 이런 사회 분위기는 앞으로 절대 바뀔 수 없다. 

정권을 바꾸고 법을 고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는 바꿀 수 없는 큰 흐름을 걱정할 단계는 지났고, 각자가 어떻게 이 파도 속에 살아남을 것인지를 걱정할 단계이다. 

가진 사람들은 그 재력과 권력을 십분 활용하여 살아남을 것이고, 못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칠 것이다. 

바야흐로 불신과 각자도생의 시대이며, 한국 사회는 이제 루비콘강을 건넜다.